중국기업 혁신의 전도사 발돋음

Author : 중국어과 / Date : 2014. 1. 22. 18:25 / Category : 중국리포트/중국교류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면서도 기술분야의 제품은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중국이 '혁신'을 통해 바뀌기 시작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스 저널은 중국의 국내 IT(정보기술) 기업들이 통신장비, 모바일기기, 온라인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선두기업들을 위협하면서 트랜드를 주도해나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개발 투자 증가


WSJ는 중국 IT 기업이 부상하는데는 연구개발(R&D) 투자 증가가 일부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바텔연구소의 지난달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의 올해 R&D 지출은 2천840억 달러로 2012년에 비해 22%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의 R&D 지출은 4천650억 달러이지만 증가율은 4%로 중국에 비해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바텔연구소는 중국의 R&D 투자 규모가 2018년에는 유럽, 2022년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중국 하드웨어 기업





지난해 휴렛패커드를 넘어서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가 된 레노보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무섭게 성장하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레노버의 해외 모바일기기 사업을 이끌기 위해 2012년초 이 회사에 합류한 실리콘밸리 기업인 출신 J.D 하워드는 "우리는 '게임 체인저'가 필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레노버는 지난달 하순 중국 중부지역의 우한(武漢)시에 20만㎡ 면적에 8억 달러를 들여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R&D 및 생산 기지를 완공했고 마케팅에 미국 프로풋볼(NFL)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2012년 NFL측과 3년 기간으로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고 아시아지역의 스마트폰 광고를 위해 미 프로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고용했습니다.



중국 소프트웨어 기업





중국 IT 업체의 대부분이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대단한 성과를 거뒀지만, 소프트웨어와 유저 인터페이스 부분에서는 아시아의 여타 IT 기업들처럼 취약한 것으로 지적됐습니다. 그러나 텐센트는 이러한 트랜드를 극복하고 위쳇이 중국 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했으며 작년에는 인도, 남아공,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시장에 위쳇을 진출시키기 위해 해외광고에 2억 달러를 썼습니다.



텐센트의 주가는 지난해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1천230억 달러로, 페이스북(시가총액 1천390억 달러)과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WSJ는 전했습니다.



Tags : 중국 미래, 중국 혁신, 중국기업, 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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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500대 기업으로 살펴 본 중국기업

Author : 중국어과 / Date : 2014. 1. 22. 17:53 / Category : 중국리포트/중국교류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선 중국 기업


2013년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중국 기업은 95개를 이름에 올렸습니다. 이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입니다. 대만 기업(6개), 홍콩 기업(3개)을 제외한 중국 본토 기업만 하더라도 무려 86개에 달합니다.


10년 전인 2003년에는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기업이 12개에 불과했으니, 그간 약 8배나 수치가 늘어난 것인데, 이를 통해 중국이 세계의 제 2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 기업의 경쟁력도 크게 향상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 애플, 도요타와 같이 여러분 머리 속에 막상 떠오르는 중국 기업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중국 기업이 글로벌 500대 기업의 5분의 1을 차지함에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86개 중국 기업 중 90%는 공기업(公企業)

 




바로 기업 형태로 보았을 때 위 86개 업체에서 공기업(국가 소유의 중앙기업과 국영기업)이 90%이상을 차지한다는것 입니다. 사기업(社企業)이라 할 수 있는 민영기업은 9%, 단 8개 밖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즉,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릴 만한 소비재 제조업 및 전자 산업, 유통 등에 종사하는 민영기업의 수와 그 영향력이 전체 중국 기업들 사이에서 극히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에너지, 금융, 전력, 금속, 장비 제조, 운수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중국의 거대 기업들은 모두가 국유기업(國有企業)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Tags : 중국 국영기업, 중국기업, 포츈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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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 승리와 중국의 탄생

Author : 중국어과 / Date : 2014. 1. 22. 16:39 / Category : 중국리포트/중국교류

중화민국의 탄생


19세기 말 중국 왕정은 무능하고 부패한데다가 제국주의적인 서양 열강들의 중국대륙 진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의화단사건 이후 거듭된 혁명의 진통을 거친 다음에 그들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국의 탄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공화국은 초대 지도자 손문(孫文, 쑨원)이 일찍이 사망하고 난 다음 1927년에 국민당의 장개석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곧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 사이가 결렬되면서 그때부터 중국은 양대 세력 간에 20년이 넘도록 내전을 겪게 되었습니다.






중국 내전의 시작


장개석(장제스) 군대가 주요도시를 장악한 반면에 모택동(마오쩌둥) 군대는 농촌과 산악지대로 밀려났습니다. 초기에 10:1로 열세했으나, 모택동은 게릴라전을 개발하여 농촌주민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게릴라들은 소규모 단위로 기동력을 최대로 발휘하면서 적 파견대들을 집중적으로 습격하고 도망가는(hit and run) 방법으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여 모택동은 그 자신이 말했듯이 오히려 10:1의 전술적 우세를 유지하여 승리를 거두고 그런 작은 승리들을 누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전략적 우세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일전쟁의 시작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 이후 중국은 안으로 내전을 치르고 밖으로는 대일항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일본이 만주점령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장개석은 공산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모택동은 1934~35년에 약 10,000㎞의 대장정을 떠나게 되었고 그리하여 본거지를 남부의 정강산(井崗山)에서 북부의 연안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국부군(국민당 정부군)의 공격을 피하면서 경험한 이 장정기간 중에 사실상 공산 게릴라들은 훌륭한 실전 훈련을 쌓게 되었고, 또한 농촌 지역을 장악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937년 일본이 만주에서부터 중국을 침략하자, 중국내전은 소강국면에 들어가고 양대 세력은 일단 연합전선을 펼쳤습니다. 2차대전 중 장개석은 연합국, 특히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군사원조를 받아냈습니다. 국부군과 공산군은 각각 나누어 점거한 지역에서 대일항전을 벌였는데, 종합적으로 말할 때 공산군이 훨씬 더 괄목할 만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공산 게릴라들은 적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벌이며 일본군을 꽤 괴롭혔으나, 국부군은 이렇다 할 만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연합국 지도자들은 장개석에게 크게 실망했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2차대전 종전 이후 중국이 다시 내전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을 때 공산당은 득의양양하고 중국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2차 중국내전의 시작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에 국민당과 공산당은 몇 차례 협상을 가졌으나 워낙 깊은 불신의 골은 평화적인 타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1946년부터 본격적인 내전 상황으로 치닫게 했습니다. 이때 양쪽의 병력을 비교해보면 370만:120만 명으로 국민당 편이 우세했으나 질적으로는 공산군이 훨씬 유리했다. 공산군은 기강이 잘 잡혀 있고 용맹하게 싸우는 데 반하여 장개석 군대는 전투의지가 부족한데다가 약탈을 일삼아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장개석 정부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고 군 지휘관들 가운데도 부패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장개석은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와 제공권의 이점을 최대로 살리고자 했으나 장군들과 그의 군대는 장개석이 촉구하는 신속한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습니다.한편, 모택동은 그동안 일본군과의 싸움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개발시켜온 전술을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비록 북부의 농촌 주민들로부터 대폭적 지지를 받고 있었지만, 그는 일단 대충돌을 피하는 대신 주로 국부군의 보급선을 습격하는 방법으로 지구전을 펼치고, 후에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결전을 벌이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948년 중국경제는 파탄지경에 빠졌습니다. 약 2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시달릴 대로 시달린 국민들은 간절히 평화를 갈망했고, 강력한 정부를 원했다. 중부와 서부지역의 흉년으로 민심은 흉흉하고 곳곳의 만연된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고위직 관료들과 장군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고 대외무역 적자가 손쓸 수 없이 증가했지만 정부는 어떠한 경제계획도 수립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상황을 공산주의자들은 최대로 이용했습니다.


공산당의 승리


그들은 북경과 봉천 간 철도를 습격하여 국민당 정부 입장을 더욱 궁지에 빠뜨렸습니다. 1948년 10월 공산군은 봉천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하여 북부지역의 국민군 기지들을 하나하나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공산군은 11월 말에는 서주(徐州)의 강력한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국부군의 저항을 사실상 종식시켰습니다. 


이듬해 남경이 함락되기에 앞서 장개석은 군사회의를 소집했지만, 휘하 장군들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절망 상태에 이른 국부군 잔여병력은 상해와 그 일대의 해안에서 대만과 해남으로 철수했습니다. 1949년 10월 1일 북경에서 공산당은 중국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강력한 공산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모택동의 공산 게릴라들이 성장하여 중국 천하를 장악한 것은 결코 그들이 자랑하는 게릴라 전술에 의한 승리라기보다는 부패한 국민당 정부와 기강이 빠진 국부군의 패배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 중 중국농민들은 약탈을 일삼는 국부군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고, 그 반대급부로서 비교적 군기가 잘 잡힌 공산군을 환영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승리는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함으로써 가능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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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소개

Author : 중국어과 / Date : 2014. 1. 20. 18:37 / Category : 중국리포트/중국교류

정글만리 소개


조정래 작가가 네이버에 3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약 3개월여 동안 께 매일 연재되며 독자에게 사랑받은 정글만리를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정글만리는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의 중심이 되며 G2로 발돋움한 중국의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들과 싼 목숨으로 취급받는 농민공들의 모습 등 경제개발의 어두운 이면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다섯 나라 비즈니스맨들과 얽히고설킨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중국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 중국에 부와 성공을 쫓아 글로벌 비즈니스맨들이 몰려들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치부되던 나라가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해 경제 강대국으로 우뚝 선 현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수천 년을 함께해 온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며,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조정래 선생님께서는 정글만리에서 그리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작가적 고민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대한 통찰과 전망으로 이어져 집필로 결실을 맺게 된『정글만리』는 각권 당 원고지 1,200매로 구성되어 총 3,600매의 전 3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 이는 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작가가 소련의 갑작스런 몰락과 달리 건재한 중국의 모습을 보고 중국을 무대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고 20여 년을 꾸준히 고민해 온 결과입니다.


중국에서 성공을 좇는 이들의 욕망과 암투가 다종다양한 중국식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이와 더불어 급속한 개발이 빚어낸 공해 문제, 중국 특유의 ‘런타이둬(사람이 많다)’ 이면에서 벌어지는 인명경시의 세태,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뒤로하고 대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한 저소득 농민공들의 모습 등은 과속 성장의 폐해를 드러내며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합니다. 


또한 거대 비즈니스를 둘러싸고 경쟁하는 한국와 일본의 비즈니스맨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과거사와 그 저변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까지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역을 답사하며 기본 구성을 다지고 본격적으로 집필에 몰두한 이후 조정래 작가는 매일 원고지 20~40매 분량을 펜으로 꼼꼼히 써내려감으로써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간략 줄거리

신입사원 때부터 중국에서 발령받아 우연치 않은 기회에  회사에 실적으로 인정받아 온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은 거대 권력을 소유한 세관원인 샹신원의 의뢰로 한국에서 실력 있는 성형외과 의사를 데려온다. 불운의 사고로 수억의 배상금을 물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떠밀리다시피 하여 상하이 땅을 밟는 서하원은 급성장하는 중국 성형시장에서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밤낮없이 일하고, 그 덕분에 샹신원과 전대광의 의의는 더욱 돈독해진다.

베이징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20대 청년 송재형은 동아리 활동 중 뒤늦게 역사학에 눈을 뜨고, 유학 후 한국에서 취업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엄마의 기대에 맞서 전공을 바꾸기 위해 삼촌인 전대광을 찾는다. 수재들의 집합소로 일컬어지는 베이징대에서조차 마오쩌둥에 대한 신화화가 지속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목도하고 재형은 중국 지식인 계층이 갖고 있는 당에 대한 맹목적 믿음의 이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편, 급속한 경제개발 속에서 건설업이 호황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제계에는 생소한 회사인 골드 그룹이 상하이에 진출하고, 미모의 젊은 여회장 왕링링은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킨다. 베일에 가려진 골드 그룹이 대대적으로 벌이는 건설 사업에 필요한 철강의 수주 건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 독일의 철강업체가 각축전을 펼치는데


Tags : 정글만리, 조정래, 중국경제, 중국관계, 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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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줄 서서 만두 사 시민들과 함께 먹어

Author : 중국어과 / Date : 2014. 1. 20. 17:20 / Category : 중국리포트/중국교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예고 없이 베이징 시내의 만두가게를 찾아 직접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하고 시민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지난 12 29일 신화통신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8일 낮 베이징 웨탄시제(月壇西街)에 있는 칭펑(慶豊)이란 만두가게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만두와 야채 한 접시, 국물 등 21위안(약 3650원)어치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그가 주문한 것은 북방지역의 요리였다고 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이어 탁자로 가서 일반 손님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출처: 웨이보

식당 종업원은 "갑자기 시 주석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며 "매우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시 주석 앞에는 7~8명의 손님이 줄을 선 상태였고, 한 고객은 "이 분은 총서기 아닙니까"라며 매우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주석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고객들은 시 주석 주변으로 몰려와 인사를 나눴고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습니다.

식당 사장은 황급히 나와 시 주석에게 줄을 설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시 주석은 끝까지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했다고 중국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웨이보에는 시 주석이 소형 버스를 타고 수행원들과 함께 찾았다는 목격담도 올라왔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사치풍조 척결을 강조해 왔습니다. 일반인과 함께 줄을 서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적지 않은 누리꾼들은 '좋은 모습이다' '감동적이다'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연말연시에 지도자들이 서민들과 접촉하는 관행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의도된 쇼'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Tags : 시진핑, 중국이야기, 중국주석, 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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